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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이야기

나의 문학 이야기: 안토니오 마차도 '어느 봄날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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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여, 길은 없다.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보았을 이 시구(詩句)로 유명한 스페인 서정시인 안토니오 마차도(Antonio Machado, 1875 ~ 1939)를 '시간과 기억의 시인'이라 일컫는 것에 십분 동의한다.

 

 

어느 봄날 오후
그녀가 내게 이렇게 말했지.
꽃이 핀 땅을
보려거든
너의 말(言)을 죽여
그리고
너의
영혼에 귀를 기울여.
아침 첫 햇살 같은
네가 입은 린넨 천으로
애도의 옷을 지어 봐.
축제의 옷을 지어 봐.
너의 기쁨을 사랑해 봐.
너의 슬픔을 사랑해 봐,
꽃이 핀 땅을
보려거든.
봄날 오후에게
내가 답했지.
너는 내 영혼의
비밀을 밝히고 말았구나.
나는 기쁨이 싫어
고통도 싫고.
그렇지만 너의 꽃 핀
오솔길을 밟기 전에
나의 오래된 죽어 버린
영혼을 네게 바칠까 하는데...

(전기순 옮김)

 

Me dijo una tarde
de la primavera:
Si buscas caminos
en flor en la tierra,
mata tus palabras
y oye tu alma vieja.

Que el mismo albo lino
que te viste, sea
tu traje de duelo,
tu traje de fiesta.

Ama tu alegría
y ama tu tristeza,
si buscas caminos
en flor en la tierra.
Respondí a la tarde
de la primavera:
Tú has dicho el secreto
que en mi alma reza:
yo odio la alegría
por odio a la pena.

Mas antes que pise
tu florida senda,
quisiera traerte
muerta mi alma vieja.

 

 

봄날의 오후는 방황하는 삶의 무서운 비밀을 시인에게 완전히 맡기며, 오래된 영혼(삶의 깨달음)이 시인을 보듬어서는 살고 죽는 기쁨과 슬픔 모두를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 시인은, 하지만, 슬픔을 미워하기에 기쁨도 미워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그의 오래된 영혼이 이미 죽어버렸다고 한다.

 

'봄날의 오후' 이 시는 죽음으로 인도되는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다. 죽음 뒤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인해 꽃 핀 길을 밟기 전에 오래된 영혼에 기대어 진심어린 기도를 드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