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적에 우리집에서는 종종 우족과 소꼬리를 사다가 곰솥에 푹 고아서 몇날 며칠을 우려먹곤 했었다.
진하게 우려진 사골곰국에 소금 넣고 총총 썬 대파 넣고 밥 말아서 먹을때 천상의 맛을 느끼곤 했던 기억이 늘 새롭다.
그런데, 우리집에서는 더 이상 진한 육수를 기대하기 어려운 끝물 즈음에는 늘 만두를 빚어 사골육수 만두국을 끓여먹곤 하였는데, 곰국도 곰국이지만 사실 만두국을 훨씬 더 좋아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곰국을 끓이는 것도 사실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님을 나는 잘 안다.
커다란 대야 가득 물을 받아 우족과 소꼬리를 푹 담근 후 여러 시간 핏물을 빼야하고, 곰솥에 넣고 이것들이 끓어 오르면
애벌로 삶은 물을 따라붓기를 몇 번은 해야하고, 그 다음으로 둥둥 떠오르는 잡내나는 거품과 기름을 걷어내 버리기를 또 얼마나 많이 해 주어야 했던지. 엄마의 고달픈 수고가 꼭 필요했던 곰국이었다.
그런데, 만두 만들기는 곰국 보다도 더 힘든 노동이 필요해서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고되었을 여정에 가슴이 미어진다.
외할머니가 평양분이라서 엄마가 만들던 우리집 만두는 정통 평양만두였다고 생각한다.
치대고 치대기를 무한 반복하여 손목이 얼얼해진 후에야 되직한 밀가루 반죽이 만들어 지면 물 적신 베에 잘 감싸두고,
다음에는 두부를 면포로 싸서 물기가 남지 않도록 있는 힘껏 짜주고,
이어서 시금치며 부추며 숙주며 갖은 채소를 잘게 썰어 역시 면포에 넣고 물기를 짜내기를 반복하고,
물에 불려 둔 당면을 썰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재료와 잘게 간 돼지고기를 섞어 이리 치대고 저리 치대어 되직한 만두소를 만들어야 하고,
그 다음으로 밀가루 반죽을 다시 꺼내어 밤톨만한 크기로 하나 둘 뜯어낸 다음
홍두깨로 사방팔방 고루 힘주어 밀어주면 일정하게 동그란 모양의 만두피가 하나 둘 쌓여갔고
행여나 서로 엉겨붙을까 중간 중간 밀가루를 살살 발라주는 것까지 고스란히 엄마 혼자서 담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손바닥 위에 피 하나 올리고 잔뜩 부풀린 볼탱이 만큼이나 소를 가득 올린 후 피 양끝을 가지런히 모아 예쁘게 주름 모양
잡으며 꼭꼭 눌러서 만두입을 닫아주면,
그제서야 겨우 하나 큼직한 만두가 쟁반위에 담겨졌는데 이 또한 전부 엄마 혼자서 했어야 하는 수고였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만들어진 수 십개 만두를 곰솥에 넣고 아무런 조미 과정없이 그대로 끓이기만 마침내 심심한 평양식
물만두가 완성이 되고,
내가 할 일은 양조간장 (진간장), 국간장, 식초, 고춧가루를 섞어 만든 양념장을 만두 위에 살살 뿌려 맛있게 먹는 것
뿐이었다.
엄마 돌아가시고 세월이 무심하게 흘렀어도 그때 그 맛 만큼은 잊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주 가끔씩 집에서, 옛날 기억을 더듬고 어슬프게 흉내만 내어, 내 손으로 만두를 만들곤 했다.
물론 모든게 흉내만 내는 것이고, 추억만 그립지 힘들고 귀찮은 것은 싫어서 또 많은 것들이 대충이고 사이비다.
만두피는 공장에서 만든 것이고, 사골육수 또한 공장에서 끓여 비닐포장한 제품을 사다가 쓴다.
그래도 만들어 먹어보면 어릴적 그때 그맛에 그나마 제일 가까워서 아주 만족스럽다.
사실 우리집 만두를 처음 맛 본 사람들 대다수의 첫 반응은 평양냉면 비애호가와 흡사하게 '맛이 심심하다',
'이게 무슨 맛일까'와 같은데,
우리집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그 맛에 인이 박혔서인지 가끔 그맛을 쫓아 '우리집 만두 만들어 먹자'라고 먼저 말을 꺼내기도 한다.
며칠전 작은 아이가 우리집 만두가 먹고 싶다고 하길래,
이번에는 내가 우리집 평양만두를 만드는 과정을 이곳에 기록해 보고자 하였고, 또다시 긴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이 글을 보게되면,
지들도 나처럼 집안 전통 만두를 대이어 만들어 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고나 할까...











완성된 만두국은 양조간장, 국간장, 식초, 고춧가루를 1 : 1 : 1.5 : 0.5 정도로 섞어 만든 양념장을 만두 위에 뿌려서 먹는다. (난 짜장면에도 식초 넣어 먹기를 좋아하여, 식초를 더 많이 넣음)
재료 손질에서 만두를 다 빚기 까지 2시간 정도 시간이 걸리는 번거로운 과정이지만, 먹을 때 만큼은 늘 만족스럽다.
우리집에서는 만들때 일단 많이 만들고 한 번 쪄서 소분한 다음 비닐팩에 담아 냉동실에 얼려 보관해 두었다가 그때그때
꺼내어 (1인분에 다섯 개 정도) 간단히 끓여 먹는다.
추억으로 가는 우리집 평양만두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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